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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규지수
- 25-09-16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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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월가의 성공한 금융인이던 로스 롤런드는 증기기관차를 몰겠다는 유년의 꿈을 좇아 1966년 '하이 아이언 컴퍼니'란 회사를 차렸다. 그러곤 퇴역한 증기기관차를 임대하거나 사들여 보수한 뒤 관광열차로 운영했고, 대륙횡단철도 완공 100주년을 기념해 1969년 '골든 스파이크 기념열차'를 부활시켰다. 건국 200주년이던 1975~76년의 '미국 자유 열차(AFT)'도 그의 기획이었다. 그는 증기기관차가 21세기 자본주의의 선로 위를 달릴 수 있기를 바랐고 또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자기 소유의 증기기관차 '체서피크 & 오하이오(C&O) 614' 기관실의 롤런드. 가족 사진
미국 매사추세츠 콩코드의 28세 청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갤럭시s거치 )가 월든 호숫가 통나무집으로 거처를 옮긴 건 마을에 기차역(Concord Station, 1845)이 생긴 이듬해였다. 마차로 서너 시간씩 가야 하던 보스턴까지 기찻길이 이어지면서 표나게 어수선해진 마을 분위기를 그는 심란해했다. 어느 밤 그는, 어쩌면 인근 링컨역을 거쳐 온 마지막 기차의 요란한 기적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썼다. “철마가 천둥처럼 킁킁거 신협 정기예금 금리 리며 언덕을 울리고, 발로 땅을 뒤흔들고, 콧구멍으로 불과 연기를 내뿜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치 (괴물이) 이 땅에 자리를 잡으려는 듯 보인다.(…) 인간은 과연 모든 요소들을 제 고귀한 목적에 복무하는 종처럼 부릴 수 있을까!”
소로의 오두막에서 약 130km 떨어진 애머스트(Amherst)에서, 은둔하다시피 하며 지내던 시인 에 우리은행 중고차대출 밀리 디킨슨(1830~1886)은 사후 발표된 한 작품에 이렇게 썼다. “나는 열차가 먼 길을 핥으며 달리는 걸 구경하곤 한다/(…) 산 무더기들을 돌아/ 거만한 눈빛으로/ 철길 옆 움막들을 힐끔거리고/(…) 우뢰처럼 울부짖으면서도/ 늘 별의 운행처럼 정확히/ 유순하고도 전능하게/ 제 마구간 문 앞에 멈추는.” (시 ‘I like to see it lap 역모기지제도 the miles’) 시골 간이역이라 해야 할 그 ‘마구간(Amherst Station)’이 문을 연 건 1854년이었다.
1830년대 미국 북동부(Mid Atlantic)에서 상업 운행을 시작한 증기열차는 애팔래치아의 산군들을 돌고 오대호 물길을 건너 마차로 나르던 온갖 자원과 노동력을 무더기로, 뉴욕과 보스턴 등 대도시로 실어날랐다. 부동산 1840년 총연장 4,828km였던 미국 철도는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 무렵 4만8,280km로 딱 10배가 됐다. 독일 시인 하이네의 말처럼 철도가 거침없이 “공간을 살해”하던 시절이었다.
선로 부지 확보와 세금 감면 업무로 철도회사들을 도우며 큰돈을 번 변호사 출신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으로 남부 의원들의 노선 시비가 사라진 틈을 타 1862년 7월 ‘태평양 철도법(The Pacific Railway Act)’에 서명했다. 동부 철도회사 ‘유니언퍼시픽’과 서부 ‘센트럴퍼시픽’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과 선로 부지 무상 공여를 골자로 한 대륙횡단철도 건설법이었다. 7년 뒤인 1869년 5월, 마침내 대역사가 마무리됐다. 유타주 프로몬터리에서 만난 동-서부 선로의 마지막 연결 못질 행사, 즉 ‘골든 스파이크’는 건국 이래 최대의 국가적 이벤트였다.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은 자유의 종을 타종했고, 시카고 시민들은 성대한 자축 퍼레이드를 벌였다.(강준만,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그 횡단열차를 타고 이민자들이 서쪽으로 밀려갔고, 선로를 따라 수많은 역과 도시가 생겨났다. 광물과 농산물이 동쪽으로 실려가고, 동부의 산업 생산품들이 서쪽으로 팔려갔다. 철도왕 벤더빌트와 석유왕 록펠러, 철강왕 카네기 등이 그렇게 탄생했고, 20세기 미국이 또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 폭발적인 성장과 변화를 선도한 게, 소로의 잠을 설치게 한 증기기관차였다.
하지만 증기기관차는 약 100년 뒤인 1930년대 등장한, 더 힘센 디젤기관차에 밀려 서서히 퇴장했다. 연방 의회는 1944년과 56년, 68년 연방고속도로법을 잇달아 제정했고, 철도는 자동차와 경쟁해야 했다. 1950년대 철도를 장악한 디젤은 이내 오지 광산 선로 등으로 쫓겨나 명맥을 잇다가 1970년대 이후 대부분 사라졌다. 흔히 19~20세기 미국 자본주의 역사를 철도의 역사와 나란히 놓지만, 그 역사는 사실 증기기관차의 역사였다.
그래서 ‘레일팬(railfan)’이라 불리는 철도-열차 마니아들 중에서도, ‘철마’ 즉 고전적 증기기관차에 열광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페로에퀴놀로지스트(ferroequinologist)’란 단어로 차별화하곤 한다. 라틴어 ‘철(Ferrum)’과 ‘말(equus)’에 연구자를 뜻하는 접미어(-logist)를 이어 붙인 용어다.
건국 200주년이던 1975~76년 롤런드가 부활시킨 미국 역사 교육용 특별 증기기관차 'American Freedom Train'(사진 위)과 그 열차를 보기 위해 구경 나온 시민들. AFT는 뉴욕을 출발 48개 주 138개 도시를 순회했다. 미국 railroad history archive.
1969년 5월, ‘골든 스파이크 100주년 특별열차’가 뉴욕 그랜드센트럴역을 출발해 유타주까지 달렸다. ‘하이 아이언 컴퍼니’라는 회사가 특별 편성한 일종의 관광 열차였다. 1959년 퇴역(당)한 증기기관차 ‘니켈 플레이트 #759’ 등이 복원돼 객차를 선도했고, 증기기관차 장거리 운행에 필요한 급수 및 연료 공급시설이 철거된 일부 구간에서만 신형 디젤기관차가 투입됐다. ‘American Railriads’라는 가상의 로고를 단 유니언퍼시픽사의 증기기관차들은 주요 역마다 정차해 다양한 지역 이벤트를 벌였고, 시민들은 철길과 역에 모여 환생한 공룡을 보듯 증기기관차를 구경했다. 밋밋하게 기능화한 디젤-전기기관차와 달리 연신 기적 소리와 함께 증기와 연기를 뿜어내는 연통과 보일러, 석탄과 물을 실은 탄수차를 매달고 피스톤 연결로드에 엮인 바퀴들을 굴리는 철마였다. 신작 영화 ‘진정한 용기(True Grit)’의 프리미어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던 배우 존 웨인도 그 열차로 솔트레이크시티에 입성했다.
대중적인 열광에 한껏 고무된 하이 아이언 컴퍼니는 건국 200주년이던 1975~76년 ‘미국자유열차(American Freedom Train, 이하 AFT)’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보수, 복원한 세 대의 증기기관차와 한 대의 디젤기관차가 번갈아 선도한 26량 객차는 미국 역사박물관으로 꾸며져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이 대여한 조지 워싱턴의 헌법 사본, 주디 갤런드가 ‘오즈의 마법사’에서 입었던 드레스, 조 프레이저의 복싱 반바지와 마틴 루터 킹의 외투, 육상 선수 제시 오웬스의 1936년 올림픽 금메달, 아폴로 탐사선 복제품, 자유의 종 등 512점의 ‘보물’을 싣고 약 21개월간 총연장 4만858km를 달리며 48개 주 138개 도시를 방문했다. 주최자가 의도한 AFT의 최고 보물은 물론 증기기관차 그 자체였다. 시민 약 700만 명이 표를 사서 그 열차를 탔고, 최소 4,000만 명이 시간에 맞춰 선로 주변과 역에 몰려들어 열차를 구경했다.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본토 모든 주와 카운티 정부들, 크고 작은 철도, 선로 회사들의 협력으로 이룬, 역사상 전무후무한 그 증기기관차 퍼레이드의 기획자 겸 ‘기관사’가 레일팬들의 우상 로스 롤런드였다. DNA로 복원한 공룡들의 ‘공원’은 그의 꿈이 아니었다. 그는 박물관 마당 한편에서 녹슬어 가던 증기기관차들을 깨워 다시 21세기 자본주의의 선로 위를 달리게 하는 거였다. 철마 위의 돈키호테, 로스 롤런드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롤런드는 뉴욕주 올버니에서 태어나 뉴저지주 크랜포드에서 성장했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3대가 모두 철도인이었던 덕에 그는 기관차 기지 겸 정비창인 ‘크랜포드 라운드하우스’에서 살다시피 했다. 또래 아이들에게 증기기관차는 소방차는 댈 수도 없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걸 모는 기관사는 가히 우상이었다. “나는 라운드하우스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여서 기관차에 윤활유 바르는 걸 거들기도 했다.” 그건 또래들에겐 엄청난 특권이자 자랑거리였다.
14세 무렵 그는 부모와의 불화 끝에 가출해 캘리포니아로 떠났다가 한 고급 리조트에서 배우 존 웨인의 눈에 들어 그의 운전기사로 고용됐다. 그는 웨인의 설득으로 3년 만에 귀향, 고교를 마친 뒤 만 17세 무렵 월스트리트 선물시장에 진출했다. 수완이 좋았던지 그는 1966년 ‘객장중개인협회’라는 중개업체를 설립해 10여 개 메이저 기업들의 선물 거래를 전담하며 이내 백만장자가 됐고, 뉴욕상업거래소(CYMEX) 금속, 귀금속 선물거래 분과인 ‘Comex’ 이사로도 활약했다. 1980년대에는 시카고 상업거래소로도 진출해 외환, 채권시장까지 누볐다. 1987년 은퇴하던 무렵 그는 직원 150여 명에 트레이더만 16명을 두고 있었다.
기관사로서 증기기관차 기관을 손보는 뉴욕 월가 금융인 로스 롤런드(위 사진, BLET 아카이브)와 1973년 AFT재단 회장 시절의 그. AFT 재단 제공
하지만 증기기관차들이 녹슬어 가던 동안에도 라운드하우스에서 꾸던 그의 꿈은 여전했다. 아니 더 절박하게 타올랐다. ‘객장중개인협회’를 설립한 1966년, 그는 ‘하이 아이언 컴퍼니’를 함께 창업했다. 박물관이나 철도회사 등으로부터 증기기관차를 임대, 보수해 관광열차로 운용하려던 거였다.
그는 버몬트주 열차박물관 ‘스팀타운’에 전시돼 있던 104톤급 증기기관차 ‘캐나디언 퍼시픽 1278호’를 임대해 보수한 뒤 그해 10월 13일, 객차 15량에 관광객을 싣고 뉴저지주 저지시티-펜실베이니아 짐소프 구간을 시속 70마일 ‘트랙 스피드(track speed: 최대 허용속도)’로 달렸다. 게스트 엔지니어로 초청받은 열차 소유주 겸 스팀타운 오너 넬슨 블런트는 “증기기관차가 전속력으로 달리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만 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다”며 감격해했다. 젊은 갑부 롤런드는 전형적인 기관사 복장에 석탄 화부용 가죽장갑까지 끼고 기관실 스로틀 스틱을 잡았다. 자신과 블런트가 느낀 그 ‘감격’을 더 널리 알리고자 벌인 게 1969년의 ‘골든 스파이크 100주년 기념열차’였다. 그는 평생 자신을 응원해준 존 웨인의 제안에 따라 1970년 AFT 프로젝트를 위한 ‘AFT 비영리 교육재단’을 설립했다. 벅찬 환호와 수많은 화제를 남기며 AFT가 미국 전역을 누빈 1975~76년이 그의 레일팬 인생의 절정이었다. 그리고 AFT의 기적 소리는 미국 증기기관차의 사실상 마지막 포효였다.
증기기관차 부활을 위한 그의 시도는 물론 뒤로도 이어졌다. ‘볼티모어-오하이오 노선(B&O 라인)’ 개통 150주년을 기념한 1977~78년의 ‘체시 세이프티 익스프레스(Chessie Safety Express)’, 20세기 미국 철도, 자본주의의 역사를 재조명하자는 취지로 1992년 추진한 ‘21세기 특별열차(21th Century Limited)’, 미국 마지막 여객용 증기기관차인 자기 소유의 ‘C&O 614’를 투입해 뉴저지 호보켄과 포트 저비스 구간을 달린 1996~98년의 관광열차, 캐나다 밴쿠버 해안의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퍼시픽 와일드니스 열차’ 등등.
오일쇼크로 유가가 치솟던 1980년대 초, 그는 석탄 증기기관차도 차량과 기관을 개량하면 디젤-전기기관차보다 더 경제적인 대안일 수 있다며 ‘American Coal Enterpirses’라는 회사를 설립해 ‘ACE 3000‘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계 공학자 등을 고용해 C&O 614의 설비와 부품들을 개량한 뒤 실제로 연비-성능 공개 테스트를 벌이기도 했다. 그 프로젝트 역시 1980년대 중반 유가가 안정화되면서 실패했다.
부상 군인을 돕기 위한 자선 증기열차 ‘옐로 리본 익스프레스’는 스폰서 기업을 구하지 못해 구상으로만 그쳤다. 워싱턴 DC에서 남북전쟁기 남부의 거점 중 하나인 웨스트버지니아의 유서 깊은 온천 리조트 그린브라이어 호텔을 잇는 초호화 증기열차 ‘그린브라이어 프레지덴셜 익스프레스’도 있었다. “최대한 느리게(…) 우리 모두를 휴식과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라던 그 프로젝트 역시 선로회사 등의 외면으로 무산됐다.
사실 미국의 원조 '자유열차(Freedom Train)'는 1947년 트루먼 행정부의 인종분리 철폐 정책 발표 직후 흑인과 백인이 한 객차에 나란히 승차해 운행된 1947~49년 특별열차였다. 하지만 완고한 철도(종사자) 문화가 몸에 밴 탓인지, AFT를 복원한 롤런드는 공식 석상에서 더러 성차별, 인종차별적 발언을 일삼아 제 평판에 흠집을 내곤 했다. 기업들이 후원을 꺼린 데는 환경, 경제성 이슈만 있었던 건 아닐지 모른다.
어쨌건 그의 바람과 달리, 세상은 증기기관차를 미학적, 도상학적 아이콘으로만 소비했다. 증기기관차는 철도 건널목 표지판 그림으로, 어린이 애니메이션 ‘토머스와 친구들’과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 급행열차 등 가상 현실 속에, 폐선되다시피 한 지선에서 ‘관광 스피드’로 달리는 오락 열차로만 드물게 남았고, 이도 저도 아니면 ‘러스트 벨트’의 상징처럼 후미진 자리에서 녹슬고 있다.
롤런드는 2026년 미국 건국 250주년 'AFT 특별열차'의 부활을 위해 스폰서 기업을 모집하느라 말년까지 동분서주했다. 연방정부나 미국 주요 철도회사가 공식적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 fictional-locomotives.fandom.com/wiki/
롤런드는 미국의 가장 오래된 노동단체 중 하나인 ‘철도 기관사 및 열차 승무원 연합회(BLET)’가 1971년 수여한 명예 평생회원증을 훈장처럼 간직했다. 그에 앞선 명예회원은, 그 회원증을 그리 명예롭게 여겼을 것 같지 않은 3명의 대통령(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허버트 후버, 해리 트루먼)과 FBI 전 국장 에드거 후버뿐이었다. 그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암트랙 이사를 지냈고, 2021년엔 미국 철도 전통 보존 및 이익 증진을 위한 단체인 ‘헤리티지 레일 얼라이언스’의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소설 ‘돈키호테’는 망상에서 깨어난 돈키호테가 마침내 평범한 시골 노인 알론소 키하노로서 병상에 눕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롤런드는 자금난 끝에 지난해 11월 자신의 ‘C&O 614’를 철도 역사 보존, 복원 전문기업인 ‘RJD America’에 매각하고도, 건국 250주년 기념 AFT의 부활을 위해 스폰서 기업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그러다 올 초 폐암 진단을 받았다. 그에겐 전처와 낳은 1남1녀 외에 1998년 재혼한 아내(Karen Bendix)가 있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미국 매사추세츠 콩코드의 28세 청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갤럭시s거치 )가 월든 호숫가 통나무집으로 거처를 옮긴 건 마을에 기차역(Concord Station, 1845)이 생긴 이듬해였다. 마차로 서너 시간씩 가야 하던 보스턴까지 기찻길이 이어지면서 표나게 어수선해진 마을 분위기를 그는 심란해했다. 어느 밤 그는, 어쩌면 인근 링컨역을 거쳐 온 마지막 기차의 요란한 기적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썼다. “철마가 천둥처럼 킁킁거 신협 정기예금 금리 리며 언덕을 울리고, 발로 땅을 뒤흔들고, 콧구멍으로 불과 연기를 내뿜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치 (괴물이) 이 땅에 자리를 잡으려는 듯 보인다.(…) 인간은 과연 모든 요소들을 제 고귀한 목적에 복무하는 종처럼 부릴 수 있을까!”
소로의 오두막에서 약 130km 떨어진 애머스트(Amherst)에서, 은둔하다시피 하며 지내던 시인 에 우리은행 중고차대출 밀리 디킨슨(1830~1886)은 사후 발표된 한 작품에 이렇게 썼다. “나는 열차가 먼 길을 핥으며 달리는 걸 구경하곤 한다/(…) 산 무더기들을 돌아/ 거만한 눈빛으로/ 철길 옆 움막들을 힐끔거리고/(…) 우뢰처럼 울부짖으면서도/ 늘 별의 운행처럼 정확히/ 유순하고도 전능하게/ 제 마구간 문 앞에 멈추는.” (시 ‘I like to see it lap 역모기지제도 the miles’) 시골 간이역이라 해야 할 그 ‘마구간(Amherst Station)’이 문을 연 건 1854년이었다.
1830년대 미국 북동부(Mid Atlantic)에서 상업 운행을 시작한 증기열차는 애팔래치아의 산군들을 돌고 오대호 물길을 건너 마차로 나르던 온갖 자원과 노동력을 무더기로, 뉴욕과 보스턴 등 대도시로 실어날랐다. 부동산 1840년 총연장 4,828km였던 미국 철도는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 무렵 4만8,280km로 딱 10배가 됐다. 독일 시인 하이네의 말처럼 철도가 거침없이 “공간을 살해”하던 시절이었다.
선로 부지 확보와 세금 감면 업무로 철도회사들을 도우며 큰돈을 번 변호사 출신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으로 남부 의원들의 노선 시비가 사라진 틈을 타 1862년 7월 ‘태평양 철도법(The Pacific Railway Act)’에 서명했다. 동부 철도회사 ‘유니언퍼시픽’과 서부 ‘센트럴퍼시픽’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과 선로 부지 무상 공여를 골자로 한 대륙횡단철도 건설법이었다. 7년 뒤인 1869년 5월, 마침내 대역사가 마무리됐다. 유타주 프로몬터리에서 만난 동-서부 선로의 마지막 연결 못질 행사, 즉 ‘골든 스파이크’는 건국 이래 최대의 국가적 이벤트였다.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은 자유의 종을 타종했고, 시카고 시민들은 성대한 자축 퍼레이드를 벌였다.(강준만,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그 횡단열차를 타고 이민자들이 서쪽으로 밀려갔고, 선로를 따라 수많은 역과 도시가 생겨났다. 광물과 농산물이 동쪽으로 실려가고, 동부의 산업 생산품들이 서쪽으로 팔려갔다. 철도왕 벤더빌트와 석유왕 록펠러, 철강왕 카네기 등이 그렇게 탄생했고, 20세기 미국이 또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 폭발적인 성장과 변화를 선도한 게, 소로의 잠을 설치게 한 증기기관차였다.
하지만 증기기관차는 약 100년 뒤인 1930년대 등장한, 더 힘센 디젤기관차에 밀려 서서히 퇴장했다. 연방 의회는 1944년과 56년, 68년 연방고속도로법을 잇달아 제정했고, 철도는 자동차와 경쟁해야 했다. 1950년대 철도를 장악한 디젤은 이내 오지 광산 선로 등으로 쫓겨나 명맥을 잇다가 1970년대 이후 대부분 사라졌다. 흔히 19~20세기 미국 자본주의 역사를 철도의 역사와 나란히 놓지만, 그 역사는 사실 증기기관차의 역사였다.
그래서 ‘레일팬(railfan)’이라 불리는 철도-열차 마니아들 중에서도, ‘철마’ 즉 고전적 증기기관차에 열광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페로에퀴놀로지스트(ferroequinologist)’란 단어로 차별화하곤 한다. 라틴어 ‘철(Ferrum)’과 ‘말(equus)’에 연구자를 뜻하는 접미어(-logist)를 이어 붙인 용어다.
건국 200주년이던 1975~76년 롤런드가 부활시킨 미국 역사 교육용 특별 증기기관차 'American Freedom Train'(사진 위)과 그 열차를 보기 위해 구경 나온 시민들. AFT는 뉴욕을 출발 48개 주 138개 도시를 순회했다. 미국 railroad history archive.
1969년 5월, ‘골든 스파이크 100주년 특별열차’가 뉴욕 그랜드센트럴역을 출발해 유타주까지 달렸다. ‘하이 아이언 컴퍼니’라는 회사가 특별 편성한 일종의 관광 열차였다. 1959년 퇴역(당)한 증기기관차 ‘니켈 플레이트 #759’ 등이 복원돼 객차를 선도했고, 증기기관차 장거리 운행에 필요한 급수 및 연료 공급시설이 철거된 일부 구간에서만 신형 디젤기관차가 투입됐다. ‘American Railriads’라는 가상의 로고를 단 유니언퍼시픽사의 증기기관차들은 주요 역마다 정차해 다양한 지역 이벤트를 벌였고, 시민들은 철길과 역에 모여 환생한 공룡을 보듯 증기기관차를 구경했다. 밋밋하게 기능화한 디젤-전기기관차와 달리 연신 기적 소리와 함께 증기와 연기를 뿜어내는 연통과 보일러, 석탄과 물을 실은 탄수차를 매달고 피스톤 연결로드에 엮인 바퀴들을 굴리는 철마였다. 신작 영화 ‘진정한 용기(True Grit)’의 프리미어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던 배우 존 웨인도 그 열차로 솔트레이크시티에 입성했다.
대중적인 열광에 한껏 고무된 하이 아이언 컴퍼니는 건국 200주년이던 1975~76년 ‘미국자유열차(American Freedom Train, 이하 AFT)’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보수, 복원한 세 대의 증기기관차와 한 대의 디젤기관차가 번갈아 선도한 26량 객차는 미국 역사박물관으로 꾸며져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이 대여한 조지 워싱턴의 헌법 사본, 주디 갤런드가 ‘오즈의 마법사’에서 입었던 드레스, 조 프레이저의 복싱 반바지와 마틴 루터 킹의 외투, 육상 선수 제시 오웬스의 1936년 올림픽 금메달, 아폴로 탐사선 복제품, 자유의 종 등 512점의 ‘보물’을 싣고 약 21개월간 총연장 4만858km를 달리며 48개 주 138개 도시를 방문했다. 주최자가 의도한 AFT의 최고 보물은 물론 증기기관차 그 자체였다. 시민 약 700만 명이 표를 사서 그 열차를 탔고, 최소 4,000만 명이 시간에 맞춰 선로 주변과 역에 몰려들어 열차를 구경했다.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본토 모든 주와 카운티 정부들, 크고 작은 철도, 선로 회사들의 협력으로 이룬, 역사상 전무후무한 그 증기기관차 퍼레이드의 기획자 겸 ‘기관사’가 레일팬들의 우상 로스 롤런드였다. DNA로 복원한 공룡들의 ‘공원’은 그의 꿈이 아니었다. 그는 박물관 마당 한편에서 녹슬어 가던 증기기관차들을 깨워 다시 21세기 자본주의의 선로 위를 달리게 하는 거였다. 철마 위의 돈키호테, 로스 롤런드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롤런드는 뉴욕주 올버니에서 태어나 뉴저지주 크랜포드에서 성장했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3대가 모두 철도인이었던 덕에 그는 기관차 기지 겸 정비창인 ‘크랜포드 라운드하우스’에서 살다시피 했다. 또래 아이들에게 증기기관차는 소방차는 댈 수도 없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걸 모는 기관사는 가히 우상이었다. “나는 라운드하우스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여서 기관차에 윤활유 바르는 걸 거들기도 했다.” 그건 또래들에겐 엄청난 특권이자 자랑거리였다.
14세 무렵 그는 부모와의 불화 끝에 가출해 캘리포니아로 떠났다가 한 고급 리조트에서 배우 존 웨인의 눈에 들어 그의 운전기사로 고용됐다. 그는 웨인의 설득으로 3년 만에 귀향, 고교를 마친 뒤 만 17세 무렵 월스트리트 선물시장에 진출했다. 수완이 좋았던지 그는 1966년 ‘객장중개인협회’라는 중개업체를 설립해 10여 개 메이저 기업들의 선물 거래를 전담하며 이내 백만장자가 됐고, 뉴욕상업거래소(CYMEX) 금속, 귀금속 선물거래 분과인 ‘Comex’ 이사로도 활약했다. 1980년대에는 시카고 상업거래소로도 진출해 외환, 채권시장까지 누볐다. 1987년 은퇴하던 무렵 그는 직원 150여 명에 트레이더만 16명을 두고 있었다.
기관사로서 증기기관차 기관을 손보는 뉴욕 월가 금융인 로스 롤런드(위 사진, BLET 아카이브)와 1973년 AFT재단 회장 시절의 그. AFT 재단 제공
하지만 증기기관차들이 녹슬어 가던 동안에도 라운드하우스에서 꾸던 그의 꿈은 여전했다. 아니 더 절박하게 타올랐다. ‘객장중개인협회’를 설립한 1966년, 그는 ‘하이 아이언 컴퍼니’를 함께 창업했다. 박물관이나 철도회사 등으로부터 증기기관차를 임대, 보수해 관광열차로 운용하려던 거였다.
그는 버몬트주 열차박물관 ‘스팀타운’에 전시돼 있던 104톤급 증기기관차 ‘캐나디언 퍼시픽 1278호’를 임대해 보수한 뒤 그해 10월 13일, 객차 15량에 관광객을 싣고 뉴저지주 저지시티-펜실베이니아 짐소프 구간을 시속 70마일 ‘트랙 스피드(track speed: 최대 허용속도)’로 달렸다. 게스트 엔지니어로 초청받은 열차 소유주 겸 스팀타운 오너 넬슨 블런트는 “증기기관차가 전속력으로 달리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만 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다”며 감격해했다. 젊은 갑부 롤런드는 전형적인 기관사 복장에 석탄 화부용 가죽장갑까지 끼고 기관실 스로틀 스틱을 잡았다. 자신과 블런트가 느낀 그 ‘감격’을 더 널리 알리고자 벌인 게 1969년의 ‘골든 스파이크 100주년 기념열차’였다. 그는 평생 자신을 응원해준 존 웨인의 제안에 따라 1970년 AFT 프로젝트를 위한 ‘AFT 비영리 교육재단’을 설립했다. 벅찬 환호와 수많은 화제를 남기며 AFT가 미국 전역을 누빈 1975~76년이 그의 레일팬 인생의 절정이었다. 그리고 AFT의 기적 소리는 미국 증기기관차의 사실상 마지막 포효였다.
증기기관차 부활을 위한 그의 시도는 물론 뒤로도 이어졌다. ‘볼티모어-오하이오 노선(B&O 라인)’ 개통 150주년을 기념한 1977~78년의 ‘체시 세이프티 익스프레스(Chessie Safety Express)’, 20세기 미국 철도, 자본주의의 역사를 재조명하자는 취지로 1992년 추진한 ‘21세기 특별열차(21th Century Limited)’, 미국 마지막 여객용 증기기관차인 자기 소유의 ‘C&O 614’를 투입해 뉴저지 호보켄과 포트 저비스 구간을 달린 1996~98년의 관광열차, 캐나다 밴쿠버 해안의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퍼시픽 와일드니스 열차’ 등등.
오일쇼크로 유가가 치솟던 1980년대 초, 그는 석탄 증기기관차도 차량과 기관을 개량하면 디젤-전기기관차보다 더 경제적인 대안일 수 있다며 ‘American Coal Enterpirses’라는 회사를 설립해 ‘ACE 3000‘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계 공학자 등을 고용해 C&O 614의 설비와 부품들을 개량한 뒤 실제로 연비-성능 공개 테스트를 벌이기도 했다. 그 프로젝트 역시 1980년대 중반 유가가 안정화되면서 실패했다.
부상 군인을 돕기 위한 자선 증기열차 ‘옐로 리본 익스프레스’는 스폰서 기업을 구하지 못해 구상으로만 그쳤다. 워싱턴 DC에서 남북전쟁기 남부의 거점 중 하나인 웨스트버지니아의 유서 깊은 온천 리조트 그린브라이어 호텔을 잇는 초호화 증기열차 ‘그린브라이어 프레지덴셜 익스프레스’도 있었다. “최대한 느리게(…) 우리 모두를 휴식과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라던 그 프로젝트 역시 선로회사 등의 외면으로 무산됐다.
사실 미국의 원조 '자유열차(Freedom Train)'는 1947년 트루먼 행정부의 인종분리 철폐 정책 발표 직후 흑인과 백인이 한 객차에 나란히 승차해 운행된 1947~49년 특별열차였다. 하지만 완고한 철도(종사자) 문화가 몸에 밴 탓인지, AFT를 복원한 롤런드는 공식 석상에서 더러 성차별, 인종차별적 발언을 일삼아 제 평판에 흠집을 내곤 했다. 기업들이 후원을 꺼린 데는 환경, 경제성 이슈만 있었던 건 아닐지 모른다.
어쨌건 그의 바람과 달리, 세상은 증기기관차를 미학적, 도상학적 아이콘으로만 소비했다. 증기기관차는 철도 건널목 표지판 그림으로, 어린이 애니메이션 ‘토머스와 친구들’과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 급행열차 등 가상 현실 속에, 폐선되다시피 한 지선에서 ‘관광 스피드’로 달리는 오락 열차로만 드물게 남았고, 이도 저도 아니면 ‘러스트 벨트’의 상징처럼 후미진 자리에서 녹슬고 있다.
롤런드는 2026년 미국 건국 250주년 'AFT 특별열차'의 부활을 위해 스폰서 기업을 모집하느라 말년까지 동분서주했다. 연방정부나 미국 주요 철도회사가 공식적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 fictional-locomotives.fandom.com/wiki/
롤런드는 미국의 가장 오래된 노동단체 중 하나인 ‘철도 기관사 및 열차 승무원 연합회(BLET)’가 1971년 수여한 명예 평생회원증을 훈장처럼 간직했다. 그에 앞선 명예회원은, 그 회원증을 그리 명예롭게 여겼을 것 같지 않은 3명의 대통령(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허버트 후버, 해리 트루먼)과 FBI 전 국장 에드거 후버뿐이었다. 그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암트랙 이사를 지냈고, 2021년엔 미국 철도 전통 보존 및 이익 증진을 위한 단체인 ‘헤리티지 레일 얼라이언스’의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소설 ‘돈키호테’는 망상에서 깨어난 돈키호테가 마침내 평범한 시골 노인 알론소 키하노로서 병상에 눕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롤런드는 자금난 끝에 지난해 11월 자신의 ‘C&O 614’를 철도 역사 보존, 복원 전문기업인 ‘RJD America’에 매각하고도, 건국 250주년 기념 AFT의 부활을 위해 스폰서 기업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그러다 올 초 폐암 진단을 받았다. 그에겐 전처와 낳은 1남1녀 외에 1998년 재혼한 아내(Karen Bendix)가 있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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