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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규지수
- 25-11-03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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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기자]
12살 소녀 '베일리'는 무대책 아빠 '버그', 배다른 오빠 '헌터'와 함께 산다. 엄마와 아빠는 어릴 적 만나 덜컥 베일리를 낳은 후 헤어졌다. 엄마와 배다른 동생들은 간간이 만나긴 하지만,현재 베일리의 보호자는 아빠다. 물론 별로 믿음은 가지 않지만, 동네 다른 집도 대충 사정은 엇비슷하다.
철부지 아빠가 또 호들갑을 부린다. 또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3달 저부터 만나던 여성과 느닷없이 정식 결혼을 치르겠다고 깜짝 발표한다. 아빠 나름으론 깜짝 발표라고 했지만, 상의도 없이 자기 좋은 대로만 저지르는 아빠가 베일리는 못마땅해 죽을 지경이다. 한바탕 부녀간에 다투고 난 다음 베일리는 홧김에 집 근처 공터를 떠돈다. 그때 낯선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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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주택보증
대처가 만든 세상에 갇혀버린 소녀
▲ <베일리와 버드> 스틸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
ⓒ 찬란
<베일리와 버드> 속 영국 켄트 지방의 풍경은 황폐하다. 유럽 대륙과 마주 보는 이곳. 기후는 온화하고 유서 깊은 명소로 가득한 지방이지만, 영화에서 비친 켄트는 처음 방문하는 보험료자동대출납입 이들이라면 눈살 찌푸리며 발걸음 돌릴 전형적인 슬럼가다. 방치된 임대주택과 사방에 쓰레기, 벽마다 가득한 낙서에 문신을 도배한 주민, 방치된 아이들이 즐비하다. 아빠와 친구, 이웃 대다수가 출퇴근하는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아빠는 직장은 구하지 않고 환각제 성분 점액을 뿜는 두꺼비를 돈줄이라며 애지중지해 딸을 당혹하게 만든다. 그래도 자식에게 손찌검하지 않으니 지역 평균치는 상회하는 '좋은 부모'다. 아빠와 다투고 오랜만에 찾아간 엄마의 새 남자친구는 애인을 학대하는 건달이다.
동네 전체가 실업자와 백수로 넘치는 지역, 공공기관의 개입은 영화 내내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처럼, 다들 어린 나이에 속도위반으로 아이를 낳고 대책 없이 하루를 보낼 뿐이다. 도무지 일상의 소박한 기쁨을 누리거나 넉넉하지 않아도 견실한 삶이란 게 보이지 않는다. 근면 성실한 이들의 시선으론 동네 전체가 잉여 그 자체다. 선진국의 대명사 인 영국의 평범한 동네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걸까?
산업혁명 이후 끈질긴 참정권과 노동조합 운동을 거쳐 세계대전 후 노동당 정권에서 단행한 계급 타협 결과 한동안 영국은 모범적인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했다. 한계는 존재했지만,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를 이룩해 사회 구성원 간 적대는 옅어졌다. 역설적으로 대영제국의 몰락 이후 평화가 깃든 셈이다. 제국의 유산인 식민지 출신 이민자가 사회에 편입되면서 다양한 자양분이 축적된다. 세계를 석권한 문화와 예술이 여기에서 비롯되고, 강대국의 황혼은 고즈넉하게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답답하고 경직된 것 마냥 취급된 복지국가 모델은 위협을 받는다. 마거릿 대처가 1980년대 주도한 신보수주의는 훗날 신자유주의의 기원으로 평가받으며 당시 체제 모델을 '영국병'이라 맹렬히 공격한다.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기적 개인을 그 자리에 대체한 대처는 전쟁을 불사하고 노동조합을 분쇄했다. 제조업과 광산 사업장을 정리하고 공공사업을 민영화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실업자는 최소한의 복지 대책으로 연명하게 만든다. 국가 전체의 부는 늘어나고 성장률은 상승했지만, 빈부 격차는 격심해지고, 자신의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시민'으로 대접받던 노동계급은 이제 공공지원에 의존하는 실업자-일용직으로 전락했다. 그런 파괴적 변화의 결과가 <베일리와 버드> 속 켄트의 일상 풍경인 것이다.
영국의 대표 여성 감독이 선보이는 진흙 속 진주의 발견
▲ <베일리와 버드? 스틸
ⓒ 찬란
물론 이 영화는 사회모순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비판을 본령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형적인 청소년 성장물의 기본 구조에 매우 충실한 접근법을 취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놓인 작중 현실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그와 가족이 처한 상황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도가 필수다. 모르고 봐도 별문제는 없으나 알고 보면 더 쏙쏙 이해와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지만 <베일리와 버드>를 연출한 안드레아 아놀드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극영화, 다큐멘터리, OTT 드라마 연출까지 종횡무진 보폭을 넓혀온 작가주의 여성 감독이다.
이 영화 역시 그런 감독의 작품세계를 집약한 느낌이다. 흑백 혼혈에 한 부모 가정, 배다른 오빠와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가장, 교육열에 불타는 부모라면 당장 이사 궁리할 주변의 악조건으로 가득 찬 동네에서 주인공은 물질적-정서적 결핍을 일상적으로 겪는 중이다. 베일리와 이복 형제자매들은 마치 야생에 방치된 어린 짐승처럼 그려진다.
살아남기 위해 세상 다 산 애늙은이처럼 아빠랑 오빠에게 대들고 맞서지만, 12살 소녀는 자신을 옥죄는 세상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힘이 부족하다. 처음 겪는 생리에 당혹스럽고, 말로는 통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엄마의 새 애인 앞에선 동영상 촬영하겠다고 들먹이는 것 외엔 마땅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도무지 원치도 않았는데 태어난 세상은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이쯤 되면 영화 속 주인공이 절망해 타락하고 사고를 쳐도 정상참작이 될 법하다. 그러나 영화 속 베일리는 조금 다르다. 되바라진 말투에 틱틱 대거리를 어른들과 해가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지만, 미성년의 특권인 촉법이나 투정과는 궤가 다르다. 온전히 피가 섞이진 않아도 엄마가 낳은 의붓동생들이 안쓰럽고, 퉁명스럽게 대해도 애처로운 사연이 있는 이방인 돕기에 발벗고 나선다. 그런 베일리에게 좀 더 나은 삶의 조건과 공정한 기회가 제공된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관객은 저절로 상상하게 된다.
영화는 주저리 해설하기보단, 감각적 상징으로 의미를 전달한다. '버드'는 낯선 이방인 친구의 이름인 동시에, 답답한 동네에 갇힌 듯 지내던 주인공의 처지와 대비되는 자유로움으로 틈만 나면 출현한다. 그러나 상황이 심화하며 새의 형상은 조금씩 변모한다. 그 변화가 이야기 진행과 교차하며 미래를 암시하고 타자에 가깝던 동경의 대상을 점점 동일시하는 여정으로 기능한다. 무심코 지나치기 딱 좋지만 핵심적인 변화다.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원하지 않아도 경험해야 할, 1달에 한 번 도래하는 마법을 겪던 순간, 늘 닫혀 있는 창문 틈엔 시든 식물과 갇힌 채 죽은 파리만 즐비한 환경에서 베일리는 탈출하고 싶다. 하지만 스스로 삶을 개척하기엔 유예된 기간, 풀 데 없는 분노가 위험수위에 오를 때쯤 버드가 사뿐히 그녀의 삶에 끼어든다. 하지만 '키다리 아저씨'와는 거리가 멀다. 부모노릇 못하는 어른들을 불평하는 베일리에게 떠난 가족을 애타게 찾는 버드의 여정은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를 연민하게 만든다. 주인공 내면에 잠복해 있던 동정심과 이타적 면모가 그와의 만남을 통해 개방되는 것.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되, 맞설 용기를 선물하는 영화
▲ <베일리와 버드> 스틸
ⓒ 찬란
베일리와 버드의 성별과 나이 초월 우정은 깊어가지만, 두 사람 사정은 딱히 나아질 것이 없다. 아빠는 낯선 새엄마를 들이려 하고, 평소 센 척해도 아직 같은 미성년자 오빠는 통 도움이 안 된다. 엄마에게 기대려 했더니 오히려 폭력 애인으로부터 내가 구출해야 할 판이다. 의논상대인 버드라고 별반 다를 것도 없다. 그나마 툭탁거릴 대상이라도 있는 주인공이 그를 염려할 지경이다. 늘 건물 옥상에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친구의 머릿속이 궁금할 따름이다.
감독이 공들여 연출한 화면은 21세기에 잊힌 필름 카메라를 어깨에 맨 채 종횡무진 야외를 뛰어다니는 핸드헬드 촬영기법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카메라 색감 조금만 어긋나도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구질구질한 뒷골목 빈민가 풍경 자체일 배경이 묘하게 생동하며 따스한 질감으로 전환된다. 기술과 형식이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픈 기운을 온전하게 구축한 결과다.
여기에 영국이 자랑하는 대중음악 사운드가 여백을 빈틈없이 채운다. 영화 내내 굉음처럼 정신없이 울리는 배경음악은 점점 어딘가 귀에 꽂힌다. 아니나 다를까 포스트 펑크와 모던 록, 일렉트로닉 명곡이 꼬리를 물고 귀를 호사스럽게 해준다. '블러', '벌브', '콜드플레이' 등 기라성 같은 뮤지션의 트랙이 적재적소에 배치되며 사운드는 물론 가사를 통해 이야기의 배경을 채운다.
노련하고 충실한 연출 솜씨가 빛나지만,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현실의 어둠을 여과 없이 감추지 않고 재현한다. 또한 나쁜 환경에 정복당하지 않는 청소년 주인공이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와 그를 돕되, 로또 당첨이나 출생의 비밀로 억지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만들지 않는 현실감의 구현이다. 여기에 놀라운 반전과 장르 실험이 숨어 있다. 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 테다. 그렇게 도시의 뒷골목, 빈민가를 무대 삼아 현대판 환상 동화 한 편이 슬쩍 내려앉는다. 중요한 건 역시 꺾이지 않는 마음, 그 삶의 희구에 살포시 내려앉는 행운의 전령. 어둠과 비참을 배경으로 더욱 빛나는 미래의 상상을 전하는 영화다.
<작품정보>
베일리와 버드Bird2024 영국 드라2025.10.29. 개봉 118분 15세 관람가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출연 니키야 애덤스, 배리 키오건, 프란츠 로고브스키수입/배급 찬란공동배급 ㈜하이스트레인저공동제공 퍼스트맨스튜디오, 소지섭
12살 소녀 '베일리'는 무대책 아빠 '버그', 배다른 오빠 '헌터'와 함께 산다. 엄마와 아빠는 어릴 적 만나 덜컥 베일리를 낳은 후 헤어졌다. 엄마와 배다른 동생들은 간간이 만나긴 하지만,현재 베일리의 보호자는 아빠다. 물론 별로 믿음은 가지 않지만, 동네 다른 집도 대충 사정은 엇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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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일리와 버드>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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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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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답답하고 경직된 것 마냥 취급된 복지국가 모델은 위협을 받는다. 마거릿 대처가 1980년대 주도한 신보수주의는 훗날 신자유주의의 기원으로 평가받으며 당시 체제 모델을 '영국병'이라 맹렬히 공격한다.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기적 개인을 그 자리에 대체한 대처는 전쟁을 불사하고 노동조합을 분쇄했다. 제조업과 광산 사업장을 정리하고 공공사업을 민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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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일리와 버드? 스틸
ⓒ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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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역시 그런 감독의 작품세계를 집약한 느낌이다. 흑백 혼혈에 한 부모 가정, 배다른 오빠와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가장, 교육열에 불타는 부모라면 당장 이사 궁리할 주변의 악조건으로 가득 찬 동네에서 주인공은 물질적-정서적 결핍을 일상적으로 겪는 중이다. 베일리와 이복 형제자매들은 마치 야생에 방치된 어린 짐승처럼 그려진다.
살아남기 위해 세상 다 산 애늙은이처럼 아빠랑 오빠에게 대들고 맞서지만, 12살 소녀는 자신을 옥죄는 세상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힘이 부족하다. 처음 겪는 생리에 당혹스럽고, 말로는 통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엄마의 새 애인 앞에선 동영상 촬영하겠다고 들먹이는 것 외엔 마땅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도무지 원치도 않았는데 태어난 세상은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이쯤 되면 영화 속 주인공이 절망해 타락하고 사고를 쳐도 정상참작이 될 법하다. 그러나 영화 속 베일리는 조금 다르다. 되바라진 말투에 틱틱 대거리를 어른들과 해가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지만, 미성년의 특권인 촉법이나 투정과는 궤가 다르다. 온전히 피가 섞이진 않아도 엄마가 낳은 의붓동생들이 안쓰럽고, 퉁명스럽게 대해도 애처로운 사연이 있는 이방인 돕기에 발벗고 나선다. 그런 베일리에게 좀 더 나은 삶의 조건과 공정한 기회가 제공된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관객은 저절로 상상하게 된다.
영화는 주저리 해설하기보단, 감각적 상징으로 의미를 전달한다. '버드'는 낯선 이방인 친구의 이름인 동시에, 답답한 동네에 갇힌 듯 지내던 주인공의 처지와 대비되는 자유로움으로 틈만 나면 출현한다. 그러나 상황이 심화하며 새의 형상은 조금씩 변모한다. 그 변화가 이야기 진행과 교차하며 미래를 암시하고 타자에 가깝던 동경의 대상을 점점 동일시하는 여정으로 기능한다. 무심코 지나치기 딱 좋지만 핵심적인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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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도피하지 않되, 맞설 용기를 선물하는 영화
▲ <베일리와 버드> 스틸
ⓒ 찬란
베일리와 버드의 성별과 나이 초월 우정은 깊어가지만, 두 사람 사정은 딱히 나아질 것이 없다. 아빠는 낯선 새엄마를 들이려 하고, 평소 센 척해도 아직 같은 미성년자 오빠는 통 도움이 안 된다. 엄마에게 기대려 했더니 오히려 폭력 애인으로부터 내가 구출해야 할 판이다. 의논상대인 버드라고 별반 다를 것도 없다. 그나마 툭탁거릴 대상이라도 있는 주인공이 그를 염려할 지경이다. 늘 건물 옥상에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친구의 머릿속이 궁금할 따름이다.
감독이 공들여 연출한 화면은 21세기에 잊힌 필름 카메라를 어깨에 맨 채 종횡무진 야외를 뛰어다니는 핸드헬드 촬영기법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카메라 색감 조금만 어긋나도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구질구질한 뒷골목 빈민가 풍경 자체일 배경이 묘하게 생동하며 따스한 질감으로 전환된다. 기술과 형식이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픈 기운을 온전하게 구축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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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하고 충실한 연출 솜씨가 빛나지만,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현실의 어둠을 여과 없이 감추지 않고 재현한다. 또한 나쁜 환경에 정복당하지 않는 청소년 주인공이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와 그를 돕되, 로또 당첨이나 출생의 비밀로 억지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만들지 않는 현실감의 구현이다. 여기에 놀라운 반전과 장르 실험이 숨어 있다. 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 테다. 그렇게 도시의 뒷골목, 빈민가를 무대 삼아 현대판 환상 동화 한 편이 슬쩍 내려앉는다. 중요한 건 역시 꺾이지 않는 마음, 그 삶의 희구에 살포시 내려앉는 행운의 전령. 어둠과 비참을 배경으로 더욱 빛나는 미래의 상상을 전하는 영화다.
<작품정보>
베일리와 버드Bird2024 영국 드라2025.10.29. 개봉 118분 15세 관람가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출연 니키야 애덤스, 배리 키오건, 프란츠 로고브스키수입/배급 찬란공동배급 ㈜하이스트레인저공동제공 퍼스트맨스튜디오, 소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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