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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대 화두 중 하나는 ‘안미경중’ 탈피였다. 안보는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도 경제 분야에서는 중국과도 적극 협력한다는 안미경중은 사실상 2000년대 이후 우리 대외 정책의 비공식적인 핵심 기조였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우호ㆍ협력관계를 진전시켜온 지난 30여 년간 전반적인 국력 신장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미중관계가 패권 경쟁으로 흐르고 대립이 격화하면서 안미경중 기조는 정치적ㆍ외교적으로 부담스러운 측 목동 푸르지오 면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미국이 이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화하면서 외교 무대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고, 국내에서도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격화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이 대통령이 그간 안미경중 기조를 취해왔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면서 더 이상 이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공식화한 것을 두고 사실상 대외정책 기조의 명확한 변경을 시사했다는 분석이 나 전주솔로몬저축은행 오는 이유다.

동맹국 ‘안미경중’에 경고한 트럼프
안미경중 기조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거부감은 비단 우리에게 국한된 게 아니다. 미국의 주요 동맹ㆍ우호국의 상당수가 안미경중의 입장을 취해왔다.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기능하면 소득자료 서 상당수 서방 국가들은 중국과의 경제협력 확대를 통해 전통 제조업에서 서비스ㆍ금융 쪽으로 산업 구조를 개편해갔다. 유럽연합(EU) 주요국과 영국, 일본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역시나 미중관계가 순탄했던 그간에는 이들 국가의 안보이익과 경제이익은 상충 가능성이 적었다.



세무무료상담 그래픽=김대훈 기자


하지만 중국 포위ㆍ고립을 통한 무력화를 전면에 내건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ㆍ우호국들의 안미경중 기조를 기회주의적 태도로 보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 고사와 천문학적인 무역적자의 최대 원인 제공자이자 미국 주도 세계 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면서 막대한 안보 부담은 미국 카드대환대출 에 지우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는 ‘대서양 동맹’의 근간을 흔든다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에 국방비 증액과 미국산 무기 구입을 요구하고 있다. 해외 주둔 미군의 역할ㆍ기능을 조정하려는 것도 국방 예산을 중국 견제에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트럼프 행정부는 특히 동맹ㆍ우호국들의 안미경중 기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경고성 메시지도 발신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지난 5월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많은 나라가 중국과 경제협력, 미국과 방위협력을 동시에 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다”며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은 중국의 해로운 영향력을 심화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동맹과 파트너들이 (중국에) 종속되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과 일본 등 주요 동맹국 대표들의 면전에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종속’으로 규정하며 미국 편인지 중국 편인지를 명확히 하라고 압박한 셈이다.
이 대통령의 안미경중 탈피 선언이 이재명 정부를 친중ㆍ좌파로 의심하는 워싱턴 일각의 부정적인 시각을 불식시켰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미국 폭스뉴스는 물론 블룸버그통신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지난 6ㆍ3 대선 결과를 ‘좌파 대통령’의 등장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근거가 없는 인상 비평의 성격이 강했지만, 한미관계에서 불필요한 억측과 이로 인한 경제적ㆍ외교적 손실을 사전에 막았다는 건 그 자체로 평가할 만하다.

안미경중 본질은 ‘전략적 모호성’
미국의 동맹ㆍ우호국들이 안미경중을 대외정책의 한 축으로 삼는 이유는 제각각일 텐데, 특히 한국은 그 이유가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안보ㆍ안위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북한 핵ㆍ미사일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선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가 필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중관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부쩍 밀접해졌지만, 북한에 대한 경제적ㆍ외교적 영향력 측면에서 여전히 중국의 존재가 상수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안미경중은 사실 ‘안보=미국, 경제=중국’이라는 이분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한미동맹은 일부 비판적인 시각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외교정책의 골간이고, 한미관계는 경제ㆍ외교안보ㆍ국방ㆍ정치ㆍ문화 등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역시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한 실용외교를 명확하게 표명했다. 한중관계도 경제협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양국 간에는 외교안보 현안이 산적해 있고, 지리적ㆍ역사적 연원에 따른 다양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다. 유럽 주요국은 물론 일본과도 다른 여건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우리 외교정책 기조와 관련해선 안미경중과 함께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용어가 회자됐다. 전략적 모호성은 의도적으로 명확한 입장을 피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 유연성과 협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상황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고,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면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반면 명확한 입장의 부재가 자칫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정책적 혼선을 부를 우려도 있다.
당시는 북한의 핵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한반도 위기가 점차 고조됐고, 미국 조야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론이 불거지기 시작하던 때다. 전략적 모호성은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한 중국 역할론이 커지는 가운데 미중관계에 일대 변화가 예상되던 상황에서의 외교전략이었다. 미국의 대외 전략이 한반도 불안을 가중시키는 측면이 일부 드러난 상황에서도 외교정책의 중심 축을 한미관계에 두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우리에게 안미경중은 사실상 전략적 모호성의 다른 표현이었던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열린 미국 해양청 발주 국가안보 다목적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 명명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뉴시스



‘동북아 중재자’의 현실화 가능성
이 대통령의 공개적인 안미경중 탈피 선언은 사실상 전략적 모호성의 폐기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봐야 할 건 전략적 ‘명확성’으로의 궤도 수정인지 여부다. 이 대통령이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 만큼 언뜻 친미 성격의 강화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갈등을 감수한 채 미국의 대외정책에 적극 호응했던 박근혜ㆍ윤석열 정부의 사례는 전략적 모호성의 폐기가 한반도 위기지수를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입지상 한중관계가 갈등과 대립으로 치달을 경우 우리의 국익은 심대하게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톈안먼 망루에 올랐다가 반년도 채 안 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논란으로 우리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던 사례는 전략적 모호성과 명확성의 극단을 오간 사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시종일관 한미일 3각 동맹 쪽으로 질주하며 반중ㆍ혐중 노선을 고집했고, 그 결과 한중관계는 ‘발전’은커녕 ‘복원’해야 할 과제가 됐다.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먼저 북미 정상회담을 제의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명분도 그렇거니와 미국ㆍ중국ㆍ북한ㆍ일본 등 동아시아 외교안보 지형을 좌우하는 주요국들 사이에서 ‘한국 역할론’을 제기한 셈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화답을 끌어낸 것을 보면 이 대통령의 안미경중 탈피 선언은 미중 양자택일 구도를 중재자 역할로 전환하기 위한 지렛대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정부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과정에서 미중 정상의 동시 참석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전의 동맹 중시 외교에서 벗어나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점은 우리의 교섭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조선ㆍ반도체ㆍ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 국방력 강화와 첨단 제조업 부활에 일조할 경우 한중 교역 확대의 여지는 오히려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래픽=박종범 기자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박근혜ㆍ윤석열 정부의 다소 즉흥적이기까지 했던 전략적 명확성이 국익 훼손으로 귀결된 사실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들 정부에서 체결된 일본과의 과거사 합의에 대한 계승 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갈등 관리도 중요하다. 이 대통령의 안미경중 탈피 발언에 대한 중국 관영매체들의 계산된 반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공식화 등은 전략적 모호성의 폐기가 ‘선택’의 문제를 넘어 ‘관리와 조율’의 문제여야 함을 보여준다.
양정대 선임기자 torc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