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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규지수
- 25-08-0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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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체 웃지 않는 그가 이 글은 읽으면 벌죽 웃을 듯하다.
1952년 5월2일(음력) 전남 장성군 삼서면 삼계리에서 그는 육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전남 장성 삼서국민학교와 삼계중학교를 졸업, 68년에 서울 만리동 균명고등학교(현재 환일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3월 말 연탄가스 사고로 몇달간 사경을 헤맨다. 연탄가스 사고로 발에 큰 화상을 입은 그는 목발을 짚고 귀향한다. 큰아들을 살리려고 전답을 파는 가족을 보고 그는 가출한다. 절뚝거리는 장애를 비관했고, 자기 때문에 망해가는 가족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일까.
고교생 때 연탄가스 사고로 장애 얻고 구두 월차 닦이·짜장면 배달하다 ‘문학’ 만나 등단이 뭔지 몰라 다시 등단하기도 14년 만의 첫 시집으로 신동엽문학상
서울 신설동에서 구두닦이 1년, 맥주홀 서빙 몇개월, 1972년경 명동 코스모스 중화반점에서 일하다가 큰여동생을 만난다. 짜장면을 배달하던 그는 ‘현대시학’ 사무실 나무계단 옆에 쌓여 있는 문학잡지를 읽으며 ‘문학’을 만난다. 197 동탄신도시에 7년엔 공부하러 상경한 두 동생과 살다가, 종로 르네상스 고전음악다방에서 문학회 모집광고를 보고, 1982년 보리수 다방 시낭송회에 참여한다.
1986년 그를 알아본 김우창 교수가 ‘세계의 문학’에 그의 시를 소개한다. 그것이 등단인지도 모른 그는 구상 시인의 추천으로 1988년 ‘현대시학’으로 다시 등단한다. 1995년 어머니가 암투병할 여유자금 때 그는 가족과 함께한다.
첫 시집을 내는 데 14년이 걸린 그는 “눈물은 푸른 색을 띠고 있다/ 멍을 우려낸 것이기 때문이다”(‘눈물은 푸르다’)라는 절창이 실린 첫 시집 ‘눈물은 푸르다’(2002)로 신동엽창작기금을 받는다. 두 남동생이 수상식에 참여하여 행복한 시간을 지낸다.
시집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2007 주택담보대출조건 )를 내고, ‘리얼리스트100’에 이듬해에 가입할 무렵, 가락시장 경매장에서 트럭에 짐을 싣던 임성용 시인을 만난다. 임 시인이 일하는 공장에 레일을 깔고 대차 돌아가는 회전판을 그가 직접 용접해서 제작한다. 임 시인은 함께 사우나에 갔다가 그의 몸에 새겨진 저주 같은 흉터를 본다. 그 상처가 있기에 “상처는 영혼을 켜는 발전소다”(‘상처를 위하여’)라고 경기대고사장 쓸 수 있었겠다.
일본에서 살던 내가 잠시 귀국한 2008년, 대학로에서 그는 다무라 류이치, 다니카와 슌타로 등 일본 시인을 높이 평가했다. 김광림 시인에게 일본 현대시를 사숙한 놀라운 용접공이었다. 가장 싼 음식을 먹자며 한참 헤매다가 3천원짜리 국수를 먹은 그날부터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인천작가회의 계간지 ‘작가들’에서 3년간 편집위원으로 일한 그는 2011년 시집 ‘고양이의 마술’을 내고 다음해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한다. 검은 고양이마냥 혼자 어슬렁, 그는 변두리에 앉곤 했다. 2013년 산문집 ‘노동과 예술’을 내고, 추천사를 쓴 나에게 알랭 바디우를 연구한 김상일 교수 모임에 가자고 권해서 함께 공부하기도 했다.
2012년 8월 한국작가회의 수련회 때. 윗줄 왼쪽 셋째가 당시 특강을 맡았던 신경림 시인, 그 오른쪽이 최종천 시인, 왼쪽이 김응교 시인이다. 김응교 제공
2015년 봄에 최종천 시인은 인천 배다리 근처 도원역 우각로 근처로 이사간다. 인천 문인들이 집들이를 해준 이때부터 육년을 살면서, 계단으로만 된 골목, 길냥이, 노인들, 파르테논 신전 같은 전도관 등 송림동의 남루한 아름다움을 집중해서 쓴다.
“고춧대 여섯 개쯤이야 따서/ 몰래 슬쩍 가지고 와 된장에 찍어 먹는 맛”(‘송림동91의 87·2’)으로 독신자는 행복했다. 할머니들의 농담과 해학을 “시 쓴다는 나는 열 번을 죽었다 깨어난다 해도/ 저렇게나 구성지고 맛깔 나는 말을 할 수 있을까?”(‘송림동의 슈퍼가 전부 망한 이유’)라며 한탄한다.
“골목이 많은 동네는 가난한 동네/ 골목이 넓고 적은 동네는 부잣집 동네”(‘골목이 골목을 물고’)라는 말처럼 서민이 사는 송림동은 이제 아파트 단지로 변해가지만, 그의 시는 영원히 이곳의 과거를 흥겹게 증언할 것이다.
촛불집회나 친일문학상 반대 모임에도 동참하던 그는, 2021년 1월 박일환 시인과 나와 함께 청와대 앞에서 부당해고자 복직을 위한 시를 낭송했다.
“저는 중학교만 졸업한 사람입니다. 중졸자가 쓴 이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기 계신 경찰들은 청와대를 경호할 자격이 없겠지요.”
마이크를 잡은 그는 ‘노동의 십자가’, ‘망가니즘’을 낭송했다.
노동·언어·생태의 눈으로 창조론 쓰고 신동엽학회서 놀랄 만한 해석 풀어낸 2000년대 경이로운 시인 중 한명
지난 5년간 그가 가장 열심히 참여한 모임은 신동엽학회였다. 월례회에 그는 한번도 빠진 적이 없다. 제주도 신동엽 문학기행에도 함께 가고, 부여 학술대회에서 학자들이 놀랄 만한 해석을 풀어냈다.
비트겐슈타인, 쇼팽, 바그너 등에 관해 쓴 자신의 원고를 자주 메일로 보냈다. 다 읽지 못하고, 문장을 쉽게 썼으면 좋겠다는 둥 나는 열살이나 많은 ‘형’에게 투정 부렸다. 버릇없게 굴어도 그가 모두 받아주니까.
노동, 시, 비트겐슈타인, 클래식 음악, 창세기. 다섯 가지는 그가 끈질기게 성찰하고 어눌하게 말했던 키워드다. 말수 적은 그는 입만 열면 창세기였다.
빨간 밑줄을 그은 그의 성경 가죽 커버는 해어졌다. 마지막 저서 ‘창세기의 진화론’(2025)은 노동, 언어, 생태의 눈으로 쓴 창조론이다. 창조와 예수를 배반한 일부 교회에 분노한 그의 책에 추천사를 쓰면서, 나는 방대한 사유에 찬탄했다.
최 시인이 쓰러지기 한달 전, 신동엽학회에서 고리키의 ‘어린 시절’에 이어서 ‘어머니’를 읽었다. 모임이 끝나고 그가 내게 전화했다. “아부지 엄마가 매일 싸우고, 내가 고리키처럼 자랐어. 많이 맞고, 매일 울었지.”
수염 없는 고리키 닮은 그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다. 변두리에 살던 그는 자본보다 노동이 중심, 아파트보다 송림동 골목이 중심, 타락한 문명보다 창세기가 중심이라고 역설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그의 방에는 ‘창세기의 진화론’이 쌓여 있었다. 기증본을 보내려고 주소를 적다가 무리했던 모양이다. 널리 알려달라며 나에게도 두 박스나 보냈다. 큰형의 원대로, 동생들은 빈소에서 조의금도 받지 않고, 저 책을 형의 벗들에게 드렸다.
최종천 시인. 박은미 제공
그는 분명 2천년대 경이로운 시인 중 한명이다. 그의 노동시는 계급성과 자본의 욕망을 직설 비판하면서도 재미있다. “노동계급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사제(司祭)”라며 그는 노동시의 지평을 넓혔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의 추모식 날(7월19일), 변두리 빈소에 송림동 고양이 같은 벗들이 모였다. 1주기 때 그의 책을 내고, 낭송회와 심포지엄을 그가 사랑하던 인천에서 하기로 했다. 밑바닥을 극복한 그는 가장 성숙한 정점에서 명작을 남겼다. 예수가 사랑할 승리자, 최종천 시인은 영원한 행복을 쟁취했다.
김응교/시인·문학평론가·숙명여대 교수
지난 7월19일 열린 최종천 시인 추모제에 문우와 가족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김응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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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5월2일(음력) 전남 장성군 삼서면 삼계리에서 그는 육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전남 장성 삼서국민학교와 삼계중학교를 졸업, 68년에 서울 만리동 균명고등학교(현재 환일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3월 말 연탄가스 사고로 몇달간 사경을 헤맨다. 연탄가스 사고로 발에 큰 화상을 입은 그는 목발을 짚고 귀향한다. 큰아들을 살리려고 전답을 파는 가족을 보고 그는 가출한다. 절뚝거리는 장애를 비관했고, 자기 때문에 망해가는 가족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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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살던 내가 잠시 귀국한 2008년, 대학로에서 그는 다무라 류이치, 다니카와 슌타로 등 일본 시인을 높이 평가했다. 김광림 시인에게 일본 현대시를 사숙한 놀라운 용접공이었다. 가장 싼 음식을 먹자며 한참 헤매다가 3천원짜리 국수를 먹은 그날부터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인천작가회의 계간지 ‘작가들’에서 3년간 편집위원으로 일한 그는 2011년 시집 ‘고양이의 마술’을 내고 다음해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한다. 검은 고양이마냥 혼자 어슬렁, 그는 변두리에 앉곤 했다. 2013년 산문집 ‘노동과 예술’을 내고, 추천사를 쓴 나에게 알랭 바디우를 연구한 김상일 교수 모임에 가자고 권해서 함께 공부하기도 했다.
2012년 8월 한국작가회의 수련회 때. 윗줄 왼쪽 셋째가 당시 특강을 맡았던 신경림 시인, 그 오른쪽이 최종천 시인, 왼쪽이 김응교 시인이다. 김응교 제공
2015년 봄에 최종천 시인은 인천 배다리 근처 도원역 우각로 근처로 이사간다. 인천 문인들이 집들이를 해준 이때부터 육년을 살면서, 계단으로만 된 골목, 길냥이, 노인들, 파르테논 신전 같은 전도관 등 송림동의 남루한 아름다움을 집중해서 쓴다.
“고춧대 여섯 개쯤이야 따서/ 몰래 슬쩍 가지고 와 된장에 찍어 먹는 맛”(‘송림동91의 87·2’)으로 독신자는 행복했다. 할머니들의 농담과 해학을 “시 쓴다는 나는 열 번을 죽었다 깨어난다 해도/ 저렇게나 구성지고 맛깔 나는 말을 할 수 있을까?”(‘송림동의 슈퍼가 전부 망한 이유’)라며 한탄한다.
“골목이 많은 동네는 가난한 동네/ 골목이 넓고 적은 동네는 부잣집 동네”(‘골목이 골목을 물고’)라는 말처럼 서민이 사는 송림동은 이제 아파트 단지로 변해가지만, 그의 시는 영원히 이곳의 과거를 흥겹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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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교/시인·문학평론가·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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