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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부의 긴급 시스템 점검으로 인해 일부 서비스 이용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요즘 금융 앱의 시작 화면에 들어가면 이런 안내 메시지를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2025년 9월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온라인 행정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아서다. 주민등록증 진위 확인이 중단돼 비대면 계좌 개설은 당분간 어렵게 됐다. 장례식장에서는 ‘이(e)하늘장사정보시스템’ 접속이 막혀 발인이 미뤄지며 강제로 4일장을 치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뉴스에서 남의 일처럼 보던 릴게임 추천 사이트
혼란이 내 일상에서 일어난 셈이다.
문제는 이런 사태가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2018년 케이티(KT) 아현지사 화재, 2022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그리고 2025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기술문화연구자 박승일은 ‘기계, 권력, 사회’(사월의책 펴냄, 2021년)에서 KT 아현지사 화재 당시의 통신대란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증권회사추천
“전화도 인터넷도 할 수 없고, 버스도 탈 수 없고, 결제도 안 되는 세계. 작은 화재 말고는 변한 게 없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변하고만 세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때는 금융, 교통, 지도, 심지어 친구 사이의 소통까지 마비됐다. 우리는 인터넷 연결 없이는 문명이 정지해버리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기술적 재난이 계속 성호전자 주식
되풀이될까? 어째서 우리는 과거 사건에서 별다른 교훈을 얻지 못할까? 이것은 천재(天災)인가, 인재(人災)인가?



‘기계, 권력, 사회’, 박승일 지음, 사월의책 펴냄, 2021년


‘긴 시간 예방’ 아닌 그 반대로 가릴게임추천
는 세상
한국에서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재난을 자연재난과 사회재난 두 가지로 나눈다. 이 중 사회재난 범주는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는 2019년에 사회재난 범주에 포함됐고, 2024년에는 국가 기관 전산망 마비가 사회재난으로 법령에 명시됐다. 이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고는 사회재온라인야마토게임
난으로 인정된 첫 번째 전산망 마비에 해당한다.
과학기술학자 홍성욱은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동아시아 펴냄, 2024년)에서 기술적 문제로 발생하는 재난을 ‘기술재난’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재난은 천재도 인재도 아닌, 기술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와 인적 오류가 결합해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재난이다. 신기술로 자연재난에 맞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기술이 낳은 새로운 재난의 독특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재난은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에 걸쳐 있으며 기존 이분법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기술재난에는 시스템적이고 구조적인 기술적 원인이 있기에 단순히 한 사람의 책임을 묻기 쉽지 않다는 근본적 난점이 있다. 실제 이번 전산망 마비는 개별 기관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전산 시스템을 ‘이중화’하지 않은 것 때문에 발생했다. 충분한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 같은 전산 시스템을 두 곳 이상에 구축하지 못했다. 기술 시스템이 낳는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책임자 처벌에만 만족한다면 비슷한 재난이 또다시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기술재난은 재난에서 회복하는 문제에서도 자연재난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지진과 홍수 같은 자연재난을 겪으며 지역 공동체가 더 끈끈하게 뭉치는 경우는 적지 않다. 반면 기술재난은 사회를 통합하지 않고 오히려 분열시키는 경우가 많다. 홍성욱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세월호 참사, 무안공항 참사 등을 기술재난 사례로 거론한다. 이들 참사는 모두 기술 설계나 운용 실패에서 비롯한 재난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기술의 복잡성으로 책임 소재와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히기 어려울 때 책임 회피가 일어나며, 국가 책임을 놓고 정치권은 양분된다. 재난의 진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채 사회갈등만 깊어질 수 있다.
이렇듯 기술재난에서 사람을 비난하고 벌주는 일은 쉽지만 구조적 문제를 고치는 일은 어렵다. 신뢰받는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재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할 뿐 아니라 정치적 합의를 통해 기술과 제도, 법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는 책임의 파편화에 맞서 내 주변의 구조적 취약성을 민감하게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아무리 지난하더라도 이 길 외에는 기술재난의 반복을 막을 방법이 없다. 긴 시간을 들이는 예방 노력이 중요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정반대 길로 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 홍성욱 지음, 동아시아 펴냄, 2024년


누군가는 해야 할 유지보수, 늘 후순위
세 차례 반복된 데이터센터 기술재난이 드러낸 것은 기술적 결함만은 아니었다. 이 기술재난들은 기술에 대한 우리의 기본 태도 자체가 문제임을 드러냈다.
개발자이자 테크-페미 활동가 조경숙은 ‘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휴머니스트 펴냄, 2023년)에서 언제나 무시되기 일쑤인 유지보수 노동자들을 다룬다. 그는 이렇게 지적한다. “시스템은 개발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시스템에 오류가 나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유지보수를 해줘야 할 뿐 아니라 시스템이 서비스되는 데에 필수적인 서버와 네트워크 등의 인프라 자원도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기술에 대한 유지보수 노동은 철저히 경시돼왔다. 모두가 테크 업계를 선망하는 와중에도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는 전산실은 다들 기피한다. 유지보수 노동은 제대로 값이 매겨지지 않고 대체로 평가절하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서비스를 만들었다면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유지보수를 해야 하지만, 기업이든 정부든 늘 예산 부족을 핑계로 유지보수 활동을 뒷날로 미뤄왔다. 그래서 기술재난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질베르 시몽동 지음, 김재희 옮김, 그린비 펴냄, 2011년


문제는 완벽한 자동장치 같은 것은 없다는 데 있다. 기술철학자 질베르 시몽동은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그린비 펴냄, 2011년)에서 “몽땅 기계들로 이루어진 기계란 없다”는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모든 기술 시스템은 인간의 손길을 거쳐야만 제대로 작동되고 존속된다. 항공기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수많은 정비사의 점검이 있어야 하고, 철도망이 돌아가려면 신호를 관리하는 노동자들과 선로를 보수하는 작업자들이 있어야 한다. 전산망 서버 역시 화재와 장애를 막기 위해 24시간 감시해야만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세상이 잘 굴러갈 때 우리는 유지보수 노동자를 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임무가 바로 세상을 문제없이 ‘잘 굴러가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조금이나마 체감하는 것은 시스템이 고장 나고 기술재난이 터졌을 때다. 노후화된 배터리는 누군가 수명에 맞게 바꿔야 하고, 데이터는 누군가 공들여 백업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 어떤 일도 자동으로 되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을 통한 ‘완전 자동화’를 꿈꾼다. 데이터센터에 화재가 일어났을 때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라고 분노하면서도, 인공지능 앞에서는 “완전 자동화 만세!”를 외친다. 똑같은 실수의 반복이다. 아니, 더 비극적인 반복이다.



‘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 조경숙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2023년


인간을 먹고 자라는 인공지능의 맹점처럼
오늘날 인공지능은 완전히 자동화된 미래를 약속하고, 인간 노동을 대체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마법 같은 기계처럼 열망된다. 이는 화재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전산망을 바라보던 시선과 매한가지다. 유지보수 작업 없이도 마치 자동으로 굴러갈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고립된 자율 기계가 아니다. 인간의 노동이 없으면 인공지능은 무용지물이 된다.
기술 연구자 마크 그레이엄과 제임스 멀둔, 캘럼 캔트가 함께 집필한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흐름출판 펴냄, 2025년)는 인공지능의 이면에 “기술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 노동이 있다”고 강조한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주석 작업, 결과 검증, 알고리즘 조정 등 광범위한 인간 노동에 의존한다. 오작동할 때마다 인간이 개입해 알고리즘을 보완해야 한다. 아무리 정교한 인공지능도 수만 시간의 저임금 노동이 투입된 결과물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동아프리카에서 만난 인공지능 노동자들과의 이야기에서 책을 시작한다. 케냐와 우간다에 있는 콘텐츠 검수 센터에는 수많은 데이터 노동자가 있다. 이들의 노동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콘텐츠 검수자들이 끊임없이 게시물을 감시하지 않는다면, 소셜미디어는 순식간에 폭력적이거나 노골적인 콘텐츠로 뒤덮일 수 있다. 데이터 주석 작업자들이 AI에 신호등과 도로 표지판을 구분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자율주행차는 도로를 달릴 수 없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마크 그레이엄 외 지음, 김두완 옮김, 흐름출판 펴냄, 2025년


예방·시스템 이중화 등 기술에도 돌봄이 필요
겉보기에 화려한 자율 기계 이면에는 인공지능을 훈련하면서 역으로 인공지능에 관리당하는 박봉의 노동자들과 이들이 겪는 고된 노동 현실이 있다. 인공지능은 결코 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데이터 검수자나 전산실 관리자의 노동은 보이지 않거나 과소평가되며 자동 기계의 이름 아래 지워진다.
반복되는 기술재난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하다. 우리는 이 기술 시스템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기술 혁신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기술을 돌보는 유지보수 예산을 삭감하고, 노후 장치 교체를 미루며, 안전장치 이중화를 ‘비용’으로만 계산할 뿐이다. 그 결과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가 잘 보여줬다. 반면 유지보수와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는 평상시의 예방 투자를 통해 기술재난 빈도를 줄이고, 만일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이중화된 시스템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기술은 자동화된 완성품이 아니라 끊임없는 유지보수와 돌봄 노동을 필요로 한다. 이 교훈을 외면한 채 또 다른 기술재난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던 유지보수 노동자들에게 마땅한 존중을 돌려줌으로써 진정으로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철학책 편집자
*철학책 편집자 박동수가 ‘지금 한국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철학 이야기’를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