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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선예림
  • 25-09-02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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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금 먼저 마음에 하고 와 은박찬욱 감독이 29일 이탈리아 베니스 리도섬의 살라 그란데에서 열린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어쩔수가없다' 공식 상영회를 앞두고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베니스=AFP 연합뉴스


한 남자가 실직을 한다. 25년을 다닌 제지 회사에서다. 삶의 낭떠러지에 몰린 남자는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제거하면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소심한 남자는 대범한 계획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긴다.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이야기 설정부터가 파격적이다. 자본주의 사회 치열한 생존경쟁에 대한 비유가 차가운 웃음으로 펼쳐진다.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남다른 이야기에 남다른 연출력이 연차휴가규정 더해지며 웃기면서도 처연하고 씁쓸하고도 슬픈 감정이 스크린에서 배어난다.
박 감독을 30일 오전 이탈리아 베니스(베네치아) 리도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어쩔수가없다’는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29일 밤 세계 첫 상영됐다. 박 감독은 이날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20년 만에 베니스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았 연금거치기간 다.



박찬욱 감독이 29일 이탈리아 베니스 리도섬의 살라 그란데에서 열린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어쩔수가없다' 공식 상영회를 앞두고 레드 카펫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포즈를 하고 있다. 베니스=EPA 연합뉴스


신용회복자
"미국 영화로 제작 추진하다 마음 바꿔"



박찬욱 감독은 “‘어쩔수가없다’의 주인공 유만수는 가족을 위한다는 생각에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며 “목표를 이룬 후에는 텅 빈 마음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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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는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1997)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스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2005)로 영화화하기도 했던 소설이다. 박 감독은 2005년 원작을 처음 접한 후 영화화를 계속 추진해 왔다.
박 감독은 "소설의 영화화 셀수있는명사 판권을 지닌 제작자 미셸 레이 가브라스(가브라스 감독의 아내)와 함께 일해야만" 했다. “미셸이 자기 돈을 써가며 제작을 추진했으나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작은 계속 미뤄졌다. “미셸이 한국에서 만들어 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박 감독은 “거절했다”고 한다. “미국 영화로 몇 년을 매달려 왔는데 무슨 한국 영화냐”라는 생각에서였다.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을 연출할 때쯤” 마음을 바꾸었다. “정말 이게 한국으로 옮길 수 없는 이야기인가 고민을 본격적으로 했다”고 한다. 결론은 “되겠더라”였다.
의도치 않게 ‘어쩔수가없다’를 20년 동안 준비하는 사이 세상은 급변했다. 스마트폰이 등장했고, 인공지능(AI)이 대세가 됐다. 박 감독은 “(시대 변화에 따라) 자동화된 제지 공장의 풍경이 점점 더 현대화됐다”며 “SF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지금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당초 구상했을 때보다 영화가 더 웃겨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인이 더 공감할 해고와 가족 붕괴 담아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주인공 유만수가 재취업을 위해 잠재적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CJ ENM 제공


‘어쩔수가없다’는 해고와 가족의 붕괴라는 세계 보편의 소재를 다루면서도 한국인이라면 더 공감할 내용들을 품고 있다. 중년남자 유만수(이병헌)가 실직한 후 택배업체에 일하면서 수모를 당하는 모습, 나이 때문에 재취업의 벽을 넘지 못하는 현실, 아이 교육비 문제로 고뇌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현실의 어둠을 스크린에 투영하나 마냥 심각하거나 진지한 건 아니다. 만수의 어설픈 범죄 행각이 웃음을 자주 부르고, ‘문제지’(만수가 재취업하려는 회사로 만수가 처한 역경을 은유한다) 같은 박 감독 특유의 언어 유희에는 재치가 넘쳐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종종 “어쩔 수가 없죠” 또는 “어쩔 수 없이”라고 말한다. 회사가 정리해고를 할 때도, 누군가가 살인을 할 때도, 직장인이 동료를 도와줄 수 없을 때도 저 말들이 변명처럼 등장한다. 박 감독은 “인물들이 하나같이 다 뭔가 변명거리가 있고 다 핑계가 있다”며 “관객이 생활 속에서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쓰고 있는지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감탄사처럼 쉽게 툭툭 아무 때나 쓰는 말이라서 제목에서 띄어쓰기를 없앴다”고 덧붙였다.



박찬욱 감독이 29일 이탈리아 베니스 리도섬의 살라 그란데에서 열린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어쩔수가없다' 공식 상영회를 앞두고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베니스=AP 연합뉴스


박 감독의 이전 영화와 드라마가 그렇듯 ‘어쩔수가없다’는 영상미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한 사람 얼굴 위로 다른 사람 얼굴이 포개지거나 정교하게 계산해 인물과 사물을 배치한 여러 장면 등은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박 감독은 29일 오전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저는 영화를 만들 때 (영상미보다) 인물과 이야기를 제대로 묘사하기 위한 정확성과 철저함을 중요시한다”며 “그러다 보면 우아하고 아름다운 영상이 나오는 듯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베니스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는 상영 직후 9분 동안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기립박수를 받았다.
베니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